배화 신앙과 종교적 상징

by gg582 · 2026-05-28 05:54:57 · 56 views

성인의 묘사에는 항상 빛이 따른다

기독교 성화에서 성인을 묘사할 때 무엇을 그리는가? 머리 뒤에 빛나는 원을 그린다. 불교에서 부처를 묘사할 때도 마찬가지로 머리 뒤의 빛나는 원을 그리거나, 신체가 빛나는 것으로 묘사한다. 혹자는 이러한 것을 초월적인 능력 등으로 해석하는 듯하나, 나는 조금 다른 해석을 생각해 보고자 한다.

배화 신앙: 빛은 선이고 어둠은 악이다

조로아스터교나 로마의 다신교에서 선과 악을 묘사할 때, '빛과 불의 신'과 '어둠과 그림자의 신'과 같은 교리를 갖는다. 이 교리는 꽤 원시적인 모티프가 엿보인다.

인간이 동굴에 숨어 있을 때, 인간을 지켜 주는 것은 무엇인가? 바로 '불'이다. 그리고 이 불이 가져온 것은, 낮의 수많은 위협들로부터 숨어들어 '야행성'이 될 수 있게 하는 축복, 고기를 바짝 익혀 몸에 벌레가 생기지 않게 하는 축복. 또한 체온을 지키고 어린 아이와 노인을 지킬 수 있게 해 주는 축복이었다.

따라서, 고대인에게 불은 그 자체로 신이나 마찬가지였을 수 있다.

그러나, 어둠은 무엇이었을까? 사냥을 나선 무리에서, 우두머리의 횃불이 꺼지면 사냥꾼은 목숨을 잃는다. 겨우내 나기 위해 붙인 불씨가 꺼지면, 무리는 얼어 죽는다.

이러한 시대에 가장 숭고한 것은 불이며, 갑자기 그 불이 사라지게 만드는 바람이나 외압은 마치 공포이고 적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복잡한 자연 현상들이 '왜 하필 이 때에' 맞물리는지 가장 추상적으로 설명하는 단어는 '신'이다.

기독교의 빛: Sol Invictus

가장 직관적으로 생각해 보자. 로마의 국교가 기독교가 되기 전에 무엇을 신앙했는가? 태양신이다.

기록이 유실된 예수의 탄신일은 언제로 대체되었는가? 태양신의 탄신일이다. 그리고, Soleil, Invictus, Sole... 모두 무엇과 관련이 있는가? 유럽 문화, 그리고 유럽의 성령의 불과 같은 묘사이다.

그리고 미국 가스펠에서는 또 어떠한 문장이 나오는가? Fire In My Bone.

콘스탄티누스 대제 시기에 로마는 공식적으로 기독교 국가가 되었다. 그러나 그들의 개종은 완벽히 급진적인 '베드로와 유대로부터 떨어져 나온 제자들의 신앙'이 아닌. 태양 숭배를 교묘하게 절충하여 민중의 거부 반응을 회피한 생존 전략이었다.

이 때, 태양신을 묘사할 때 태양광을 표현하던 것이, 그대로 후광이 되었다.

불교의 빛

초기 부처의 가르침에서는, 신비한 빛의 체험, 즉신불과 같은 신앙이 크게 포함되지 않았으나, 각 문화권의 영향을 받으며 그러한 것들이 더해졌다. 그리고 세계적으로 널리 퍼진 두 일파, 대승불교와 소승불교의 경우 전파 경로도 교리도 많이 달라졌다.

그리고, 대승불교는 인도로부터 동아시아로 배를 타고 곧바로 넘어온 것이 아니다. 물론, 혜초와 같은 대단한 승려들이 등장하거나, 아유타국에서 온 왕후 허황옥과 같은 일을 보아서 남아시아, 인도 유역과의 문화적, 정치적 교류가 적었다고 말하기는 힘들다.

그러나, 1차적인 대승불교의 전파 경로가 남아시아->중앙아시아->동아시아이며, 물론 중앙아시아는 이슬람 초기부터 바로 개종한 것이 정체성이라고 하지만 이슬람이 생겨나기 전까지의 고대 유산들은 존재하며, 사마르칸트의 초기 불교 유적 등이 존재했다는 것은 부정하기 어렵다.

애초에 아비타불(아미타바)의 뜻도 '끝없는 빛'이며, 전파 경로에 조로아스터교의 본산인 페르시아가 있었다. 그리고, 비로자나불(바이로차나)의 뜻 역시 빛이 널리 비춘다이다. 또한, 불교라는 종교의 교리나 행보를 보아도, 포교하는 수행자가 조로아스터교 신관과 대화를 나누고 필요한 교리를 포섭하였을 가능성이 종교 전쟁을 벌였을 가능성보다 높다. 또한, 문명이나 종교 간의 충돌이 잦으면 역사에 기록되는 경우가 잦은데, 우리가 중요한 전환점으로 여길 만한 대전쟁은 발생하지 않았다.

만약, 전파 과정에서 단 한 명의 조로아스터교 신자조차 개종하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석가모니(싯다르타)의 탄생지는 바다 신앙, 텡그리와 유사한 스텝과 대지 신앙이 생기기보단 태양이나 산에 대한 신앙이 생기기 쉬운 위치였다. 따라서, 기존에 차지하던 힌두교 혹은 다른 고대 종교들에서 찾아볼 수 있는 태양, 혹은 배화 신앙이 전혀 개입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

종교는 문화유산이다

이 문단의 주장은 가장 '나'의 생각이 강하기 때문에, 종교인이라면 너무 노할 필요는 없다.

종교에서의 판단이 무엇인가? 종교에서의 판단은 수천 년의 권위자의 판단에 기댄다. 학계의 판단이 무엇인가? 학계에서의 판단은, 수백 년의 권위자의 판단은 무엇인가? 나의 판단은 무엇인가? '나의 방어선'에 기댄다. 여기서 나의 판단은, 종교가 문화유산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이미 박물관에서 실현되는 중이다.

가장 중요한 태도는 내가 판단하는 것이다. 여기서 나는 니체니, 실존주의자들이 말하는 위버멘쉬에 완전히 반대되는 말을 하고 싶다. 인간은 모자이크이다. 수천 년 전의 사람들은 그 시대의 부모 자식들의 조각의 콜라주이고, 또 그 사람들 사이에서 엄청난 상호 참조가 발생한다. 그것이 세대를 거듭하여 조각나면 원래의 조각을 알기 힘든 모자이크가 되고, 또 그 모자이크가 콜라주가 된다.

그렇다면 1대조와 100대조 간의 차이는 이미 너무나도 커져, 1대조의 흔적이 없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나의 맥락, 나의 관계와 상관없이 수입된 종교라는 모자이크에 이입해 소비하는 것은 자아 의탁밖에 되지 않는다. 판단을 외주화하는 것은 쉽다. 철학자, 과학자, 유튜버... 그런 사람들의 명언을 되뇌이는 것은 쉽다.

하지만, 나의 방어선을 구축하는 것은 어렵다. 그렇다면, 우리만의 방어선은 우리만의 모자이크에서 나오는 것이 아닌가? 우리가 미술관에 걸려 있는 바스키아의 화폭에 과몰입하지 않는데, 왜 종교에는 과몰입해서 '그 분의 뜻이 곧 나의 뜻'이라고 하는가? 결국은, 동굴 없는 사회에서 동굴을 찾아 숨어들고 싶은 것이며, 반면교사나 학습이 아닌 퇴화가 될 수밖에 없다.

그러한 방식에서 내가 말하는 것은 타아를 통해 학습할지언정, 자아를 타아에 맡겨 버리지 말자는 것이다.

신앙과 인과: 인과 없는 인문학은 없다

인문학은 대체로 외우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크고, 나 또한 인문학을 외우면서 받아들였다.

그러나, 외워서 쉽게 익히는 것과 인과는 다르다. 독립적이고 자생적인 발견과 달리, 인문학은 발명의 영향이 더 크다. 그리고, 그 발명은 계보가 추적 가능한 경우가 잦다.

이러한 추적을 통해서,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와 같은 추상적인 믿음을 던지기보단, 우리는 '어떻게 왔는가'와 '왜 왔는가'를 묻는 것이 더 직접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는 묻고 싶다.

우리는 어쩌다가 이렇게 상징적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었는가? 만약 직관이 꼬였다면, 어디부터 풀어나가야 하는가?

이것이 웬만한 모순에서 던지는 '꼬였으면 풀어나가면 된다'는 막연한 말보다 더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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