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침한 신검소

by gg582 · 2026-05-28 16:14:47 · 35 views

때는 2021년 봄이었습니다. 저는 3월 개강하자마자 연구실에 꼬박꼬박 출석해서 법인 카드로 볶음밥을 사 먹었고요, 중국집이랑 학식 맛을 비교하면서 학식 맛도 참 형편없다면서 난리부르스를 떨던 때네요. 사실 지금 생각해 봐도 그 학식은 이다지도 잘 쉬어 버릴 수가 있는지 의문입니다. 쉬어 버린 덜 잘린 파와 냄새나는 돼지고기는 대체 어느 구석에서 받아온 건지...

교수님은 '너 군대 가면 우린 2년 기다린다'고 하셨고, 주치의 선생님은 '이미 치료가 잘 됐으니 아마 현역'이라면서 기다리고 있는 찰나였죠.

치료 내역이랑 아무개의 진단서를 들고 부랴부랴 신검소로 갔더니, 서류나 좀 뒤적이고 끼적이더니 '면제입니다'라니요. 연구 과제가 껴 있었으니 잘 되었다고도 생각했지만, 그 때도 '내 취업길은 어쩌자고' 생각은 안 했다고는 못 말하겠네요. 참 내, 새침한 사춘기 여자애도 아닌 것이, 누구한테는 이랬다 또 누구한테는 저랬다. 나보다 아파서 잘 걷지도 못하는 아무개는 현역 갔드랩니다.

뭐 이러거나 저러거나, 그 변덕쟁이 군의관은 귀찮단 듯이 집에나 가라고 퉁명스럽게 결과지만 메일로 보내 주고는 집에 가랍니다. 그래 봐야 다음 날 집에 어련히 가려구요? 법인 카드로 저녁까지 다 마치고 나서야 해가 지고 두 번째 일과가 시작되는데요.

그 때는 달이 두 번째 해였습니다. 그 두 번째 해는 새침데기가 따로 없어서 그믐, 초승 때마다 숨어서 코빼기만 비추더래요. 음산하기 짝이 없는 그믐날이면 꼭 정류장 가로등에는 나방들이 죽어 떨어졌습니다. 별 것도 아닌 연구 과제를 올려서 미친 듯이 달려가는 우리는 불나방이었던 건지, 더 숭고한 목적이 있었는지 이제는 잘 기억도 나지 않네요.

이제는 그 정류장도 폐역되어 사라졌고, 표지판도 철거됐지만요, 내심 정류장이라도 살아나면 오리온자리가 깜빡이던 경산의 어느 겨울밤을 추억할 곳이 남을까 생각합니다.

이제는 꺼진 채 방치되는 연구실의 컴퓨터, 그리고 교수님께서 졸업 전까지 혼자 닫힌 연구실만 지키시던 때 아흐마드 형의 파일, 교수님이 퇴원하시고 연구실에 잠깐 들러, 코드 백업본 공개를 허락맡으러 잠깐 PC를 킨 2025년의 한 줄 부팅 로그...그리고 고가의 적외선 모션 인식 장치는 도둑맞았고, 로봇 팔은 작동을 멈췄습니다. 뭐, 22년 말부터 24년까지 교수님께서 식물인간이셨으니 사이 기간동안 무슨 일이 생겼어도 이상할 게 없습니다.

아직도 눈을 감으면 한 번이라도 그 때의 연구실로 돌아갔으면 합니다. 알았다면 진작 그만 무리하시라고 교수님께 더 말씀드렸을지도 모릅니다.

그렇기에 저는 교수님이 직접 번역해 선물해 주신 저수준 PDF라던가, 그 때 배운 Go 언어라던가 하는 것을 안 놓은 척이라도 하려고 하는 것 같습니다. 아무리 업무할 때에는 자바만 쓴다고 하더라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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