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티오피아 알로 시다마 벤사 내추럴—두 가지 추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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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g582 · 2026-09-08 07:19:44 · 4 views
그라인더는 드롱기 KG89이고, 가장 고운 분쇄도로 맞추었다. 다른 그라인더여도 꽃소금보다 조금 더 곱고, 밀가루보단 거친 정도로 갈아 쓰면 비슷하다.
생산지의 사진
에티오피아 하마쇼 마을의 사진을 보자.
평화로운 에티오피아의 시골 마을로 보인다. 우리와 다를 것 없는 평범한 사람들이 농사 짓고 품앗이하며 살아가는 향촌인 것 같다.
바리스타들의 품평
구매처의 품평을 보자.
장미향, 백도와 리치, 라즈베리.
문제는 내가 리치를 먹어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
즉 사장님은 알아도 나는 모른다.
홍콩의 다른 사장님(Holistic Coffee)이 올려 둔 리뷰를 보자.
Kyoto Grapes, Raspberry, Pomelo.
난 포멜로를 먹어 본 적이 없다. 한국의 포메로는 댕유지라고 하는 제주도 과일인데 언제 주문해서 먹어 봐야 하나?
교토 포도...라니, 저 사장님은 대체 뭘 위해서 교토까지 가서 일본 머루를 먹어본 것인지 모르겠다. 난 못 먹어 봤다.
라즈베리도 먹어 본 적이 없다. 그러나 이 원두에서 토종 산딸기의 맛은 잠깐 느꼈다.
다른 리뷰를 또 보자. 이번엔 필리핀의 어느 사장님(Better Beans Co.)이 올린 바리스타 품평이다.
Taste notes: Blackcurrant, Black Tea, Almond, Sugarcane
홍차, 아몬드 빼고는 먹어 본 적이 없다. 홍차는 다른 홍차보다는 일본 가고시마현의 베니후키 품종으로 만든 와코차와 비슷했다.
교토 머루와 무슨 상관이 있는 것인가? 일단 일본색이 나는 식재료와 맛이 겹친다는 것이 특이하다.
아래는 내 마음대로 시음한 후기이다. 문화권과 국가, 개인적 경험에 따라 전문가의 평가도 이토록 갈리는데 단일한 정답을 찾으려 하지 말자.
매우 다양한 접근법을 가지고 있는 고전 수학 문제를 푸는 것 같다. 정답 풀이따위 없는 괴상한 퇴타술, 19세기 청이나 조선의 미적분 문제... 조금 더 괴상하게는 와산 문제를 보는 기분이다.
노트의 정당화
수삼과 미나리는 풀 맛이 아닌 허브의 향미로 다룬다. 땅콩 맛은 껍질을 까지 않은 붉은 땅콩의 기름 맛과 향으로 제한한다.
여기서의 복숭아는 물컹해지게 후숙한 황도이다. 앞의 백도와는 다르게 느꼈고 고정점도 다르다.
첫 번째 시도: 냉동 후 가열
나머지는 브리카 2인분의 정격 스펙대로 찬 물을 120ml, 원두는 탬핑 없이 깎되, 바스켓 위에 종이 필터를 넣고, 커피가 추출되는 상단부에 물을 넣은 채 섭씨 -23도에서 30분 간 포트 전체를 냉각한다.
상단부의 얼음을 부숴 버리고 찬 물로 대체한다.
커피의 첫 방울이 추출될 때 찬 물을 버리고, 1차 추출되는 커피를 받아서 바로 잔에 옮긴다.
뒤의 추출은 모두 버린다.
마치 물같은 목넘김을 보여 준다.
강한 노트들이 분리되어서 4개 먼저 느껴진다.
수삼, 미나리, 복숭아, 땅콩.
이후 미나리와 복숭아, 땅콩이 반복적으로 나타나다가 혀 가운데로 맛이 응집된다.
끝 노트는 미나리.
바디감이 전혀 없고, 쓴 맛이 없이 향과 단 맛으로 흘러간다. 단물을 먹는 것에 가깝다. 마치 감로를 먹는다면 이런 느낌일까?
굉장히 개성적이고, 향의 분리도가 어딘가 어색할 정도로 기계적이다. 정상 추출은 아니지만 의외로 맛은 매우 좋았다.
아쉬운 점은 재현성이 매우 떨어지는 기이한 방식일 뿐이다.
두 번째 추출: 온건한 냉각과 원두의 분배
브리카 2인분의 정격 용량대로 차가운 물 120ml를 투입한다. 바스켓에 커피를 넣을 때 망가진 말차선을 이용해서 커피를 고르게 펴 가며 넣는다. 남는 원두는 깎아내어 버린다.
종이 필터를 원두 위에 깐 후, 냉수를 두 방울 떨어뜨려 필터를 젖게 하고 추출이 집중되기 위한 물길을 터 준다.
그 상태 그대로 상단부에 냉수를 120ml 붓는다. 2분쯤 가열하고 해당 냉수를 버리고, 새로운 냉수로 갈아 준다.
치익 소리가 날 때 냉수를 비워서 버리고, 추출되는 커피를 보아 커피 거품이 추출액의 전체를 갓 덮었을 때 불을 끄고 잔에 따라낸다.
마시고 나서 바닥에 범 무늬가 남는다. 표범가죽의 얼룩과 비슷하다.
에스프레소는 마실 때 타이거 스킨이 남는다고들 하는데, 이것은 마신 후에 범 가죽의 무늬가 나오니 특이하다.
아래는 시음하는 동시에 맛을 기록한 것이다.
미나리--->땅콩-->산딸기->복숭아-->땅콩-->미나리
땅콩과 미나리가 합쳐지면서 끝난다.
이후 잡미를 없애기 위해 한 번 입을 헹궈 준다.
복숭아->미나리->땅콩->복숭아->미나리->복숭아->미나리->복숭아
뒤로 갈수록 미나리와 복숭아가 합쳐져 땅콩이 되고, 초반엔 미나리와 땅콩이 오히려 분리되어진다.
미나리 맛과 복숭아 맛이 섞여서 어떻게 땅콩 맛이 될 수 있는가? 미각적으로 무슨 근거가 있는지 모르겠다.
빛의 합성처럼 일정한 체계를 둬서 적+록=황과 같은 메커니즘이 있는지 알기 어렵다. 필요하다면 향미만 추출해서 혀에 떨어뜨려 보는 방법이 있겠지만 고가의 추출 장비가 필요하다.
뒤에는 땅콩, 복숭아, 미나리가 아예 합쳐지다가, 복숭아 중심의 맛에 미나리 향이 얹혀 간다.
땅콩은 중반에 끼었다가 빠지고 다시 복숭아로 수렴하여 한 가지 노트로 정리된다.
끝 노트는 복숭아의 신맛.
중간 정도 세기의 전체적인 바디감은 노트 전체를 지배하며 쓴맛은 미나리향과 한 몸이다.
플로럴하다는 업계의 표현보다는 구조적이고 뒤로 갈수록 노트가 하나씩 떨어져나가는 설계라고 봐야 한다. 복숭아 향은 무른 황도에 가깝다.
상승조로 향이 모조리 분리되는 커피도 있지만, 노트가 수렴하며 하나로 종결되는 하강조의 커피도 있다. 이것은 그 유형으로 보인다.
명확히 의도가 보이는 원두였으나, 이 설계를 현지 농협이 블렌딩하며 만든 것인지, 마을의 지역색인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추출이 달라지고 강조 노트가 벌어져도 이상하게 맛은 한 가지 노트로만 끝난다.
후기 및 잡담
평소 쓰던 앤틱 잔이 오늘도 시음에 많은 도움을 줬다. 여러모로 마음에 드는 잔이다.
이 잔은 앤틱 도자기를 파는 골동품에서 사 왔고 조선 말기~구한말 도자기라고 들었다(사실 여부는 감정사에게 다녀와야 하지만, 커피는 잘 담으니 됐다). 정제가 덜 된 회색 흙임에도 유약은 꽤나 좋은 것을 쓴 듯하다.
그 시절이나 지금이나 한국인은 이상하게 도자기를 잘 만든다. 국산 물건이 좋긴 좋다.
모카 포트 추출에서 향의 분리도를 알아 보기에는 데미타세보다 이런 앤틱 잔이 낫다. 모카 포트를 애용하며 느끼는 점이라면 이건 에스프레소의 어설픈 하위 호환이라기보단 완전히 다른 장르라는 느낌이다. 그러나 여전히 바리스타같은 전문가 계층이 재현성이 좋지 못하며 변인 통제가 힘들어서 등한시하거나 가정용으로만 권하는 도구이다. 아마 모카 포트를 메인 스트림으로 올리자고 하는 바리스타는 이번 세기에는 없지 않을까? 솔직히 올려 주면 내 마음에는 들 것 같다.
한 가지 이상한 것은, 시티 로스팅으로 판매하는 원두로는 거품 추출이 번번이 실패하다가 중약배전으로 돌아오자마자 갑자기 제대로 거품이 나온다.
서성로 인근의 스페셜티 숍들은 드립 커피 기준으로 미디엄~하이 로스팅을 판매하는 경우가 많다. 오히려 시티 로스팅에서 모카 포트 추출의 재현성이 더 망가지는 것은 이상한 일이다. 원두의 팽창 정도와 당질의 보존이 영향을 끼칠까? 거품이 묽은 마요네즈 같은 질감인 것을 봐서는 크레마와는 원리가 달라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