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단하지 말고 충분히 고민해야 하는 까닭이 무엇인가?

by gg582 · 2026-09-11 07:39:00 · 5 vi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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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논증을 생각해 보자. 백마는 정말 말이 아닐까?

공리계와 현실은 어떻게 다르며, 왜 영향 범위를 잘 판단해야 하는가? 이를 고전 철학의 단골 명제 "백마는 말이 아니다"가 왜 제대로 성립할 수 없는 질문인지, 그리고 어디까지는 논리가 맞는지 경계 조건의 검증과 제한적 수긍을 통해 파악하겠다.

공손룡은 희다는 개념과 말이라는 개념을 나눠두고 논리학적으로 서술하려 했다. 서양에서 플라톤이 비슷한 논증을 폈을 때 디오게네스가 현실계를 가지고 와서 반박했으며, 공손룡의 개념 역시 파격인 동시에 많은 공격을 받았다.

백마는 흰 말만을 말하고, 검은 말을 보고 백마라고 할 수 없다.

마굿간에 백마가 묶여 있다. 팻말에 '백마를 팝니다'라고 썼다. 백마를 옆 집에 팔고 검은 말을 사 온다. 팻말과 말이 일치하지 않는다.

그러나 백마를 앞에 두고 '말이 있습니다'라는 팻말을 둔다. 이 경우 백마를 팔고 흑마를 사와도 팻말은 틀리지 않는다.

'말'이라는 단어를 항상 '백마'로 대체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 역방향으로 '백마는 말이 아니다'라는 결론이 도출되는 것은 아니다. 심지어 마굿간에서 백색성 자체가 엄밀하게 고립된 속성이 아닌 경우도 흔하며, 백색성의 손실이 말이라는 동물의 종류를 딱히 해치지도 않는다.

아래와 같이 야생마나 군마의 교잡을 고민해 보자.

백마와 흑마가 교배하면 말이 태어난다. 말과 나귀가 교배하면 노새가 나온다.

말끼리 교배해서 말이 나왔고, 그 말을 또 말을 낳을 수 있다. 그러나 노새는 말도 나귀도 아니고, 대를 잇지도 못한다.

그렇다면 나귀는 말이 아니라는 것쯤은 쉽게 알 수 있다.

발굽 달리고 탈 수 있는 가축 중 소와 말은 잡종도 못 만든다. 그럼 말은 나귀라고 할 수 없지만, 말과 소보다 말과 나귀가 가깝다는 것은 알 수 있다.

백마는 '흰색'을 그 털에 가지고 있는가?

백마와 흑마를 교배해서 백마를 얻기 어렵다.

백마는 흰색 물감처럼 색소를 가져서 털이 흰 것이 아니라, 흰머리처럼 색 없는 털이 모종의 이유로 희게 보인다.

그렇기 때문에 '흰색'을 띠고 있다고 해서 진짜 흰 색소를 가진 털이 자라는 말은 아니다.

차라리 백마는 색 없는 말이라고 하는 편이 털의 관점에선 맞을 것이다.

흑마와 교배하면 색을 물려받는 경우가 더 흔하기 때문에 자식은 백마일 가능성은 낮다.

얼룩덜룩한 말을 얻으면 절반이 색을 얻은 것이고, 회색 털을 얻으면 완전히 까맣게 색이 못 찬 것이다.

아버지가 흑마이면 아버지를 따라 색을 얻은 것이고, 어머니가 흑마이면 어머니를 따라 흑마인 것이다.

털, 갈기, 얼굴, 코에도 같은 것이 적용된다.

그러나 단 하나의 조건 '털 색'이 말이 되기 위해 필요한 복합적인 특질을 모두 부정할 만큼 강력한 변수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그럼 백송과 제비는?

중국 운남의 '식용 제비집'을 짓는 아열대 제비와 우리나라 상가나 주택에 둥지를 트는 제비는 멀리 떨어져 있고, 서로 어울리지도 않는다. 아열대 제비와 우리나라 제비가 알을 낳고 새끼를 키울 수도 없다. 금송은 자연어에서 소나무지만 흔히 보는 소나무와 잡종이 안 생기고, 실제로는 소나무과도 아닌 다른 종류의 나무이다. 백송은 따지고 보면 원시적인 소나무가 고립 진화한 것이고, 그나마 분류해도 잣나무에 가깝다. 하나는 애초에 '금색 소나무라는 이름을 가진 소나무가 아닌 무언가'라는 언어적인 모순을 지니고, 하나는 황하강 상류 원산의 잣나무 근연종이다.

우리가 그 나무들을 묶어서 '소나무'라고 부를지언정 실질적인 경계 조건과 안 맞을 수 있다. 이는 사람과 원숭이를 묶어 부르는 '영장류'처럼 넓고 비슷하게 짝지은 구분이지 꽤 정갈하게 떨어지는 작은 분류는 아닌 셈이다. 즉 '대파'의 경계에서 말하는 식물의 범위와 '소나무'에서 말하는 가짓수는 자연어에서의 발화 조건은 같지만 실질적 범위는 매우 다르다. 반면 자연어에서 '영장류'는 '소나무'보다 더 넓은 범주로 인식되지만 호주의 거대하게 진화한 열대 침엽수까지 모두 '소나무'라고 하니 영장류보다 소나무가 더 좁은 범위라고 단정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논리적으로 오면 또 다르고, 현실의 문제는 또 다르다.

(10,0)x 좌표를 1만큼 이동하는 연산 A가 있고, x,y 좌표를 각각 스칼라 배로 2배 키우는 연산 B가 있다.

A부터 적용하고 B를 적용하면 값은 (22,0)이다.

B부터 적용하고 A를 적용하면 값은 (21,0)이다.

A가 따라붙은 B, 즉 A->B 순은 둘 중 하나만 연산한 것과 다르고, 연산 순서를 바꾼 것도 서로 다르다.

그러나 이걸 다시 고전 논증 형식으로 '백마는 말이 아니고, 흰 물감을 칠한 어떠한 말이 항상 백마가 아니다. 말은 흰색이 아니고, 흰색도 말과 같은 언어가 아니다.' 라고 만들면, 시원하게 떨어지지 않는다. 공손룡이 제시한 논리학적인 연구를 부정하자는 것은 아니지만, 현실에서 그런 논리를 들이대다간 샌님 소리를 듣기 십상이라는 것이다.

순수하게 논리적인 얘기를 한다면 "얘기가 다르잖아"는 매우 명확한 경계를 그린다. 하지만 현실 세계에서의 일은 생물을 분류하는 일부터 사람 간의 이런저런 토론과 논쟁까지 이렇다 할 절대적인 기준을 찾을 수가 없는 것이다.

앞서 해 둔 말에도 '항상 흰 털이 나오는 말은?'이라던가 '아이보리색 흰 말은?' 같은 질문이 나올 수 있고, '거북이 다리가 개 다리보다 짧다' 조차 '닥스훈트보다 다리가 긴 60살 바다거북'을 가져올 수 있다. 그것이 '현실은 복잡하다'고 맺는 이유이며, 속단하지 말라고 재차 언급하는 것이다. 충분히 신중했다고 생각해도 재단하고 나서는 항상 자투리 공간이 남는다. 많은 경우 AI 챗봇에 이 논증을 넣으면 '현실은 복잡하다고 끝내지 말고 처방을 명시해라.'고 하거나 '이 문장에서 말하는 논증의 엄밀성은 아직 부족하다.' 같은 문장을 그럴싸하게 제시한다. 모든 것을 톱질하듯 분별하여 자신의 체계에 맞추려는 태도야말로 AI 시대에 가장 위험한 조언이다. 모 아니면 도 아니냐고 묻지 말고, 신중하게 상황을 판단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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