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한국인 소비자에게 '설명될 수 있는 미각 경험'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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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g582 · 2026-06-10 12:32:15 · 26 views
우리는 어디까지를 먹어 보았는가?
우선, 가장 먼저 짚고 넘어가야 할 사실은 명확하다. 한국은 전통적으로 주류를 선호하였으며, 소비와 미식은 고급 주류와의 어울림을 중시하였다. 전통적인 감각을 가져가려 하였을 때, '이것이 과하주와 어울리는가?' 혹은 '이것이 부산 지역의 막걸리와 잘 맞는가?'는 꽤 맞는 감각이다. 하지만, 우리는 중국이나 일본과 다르기 때문에, '이것이 말차와 맞는가?' 혹은 '이것이 만다라화 찻물과 맞는가?'를 상상하기 힘들다. 박물학적인 향신채에 익숙한 서유럽이나 인도 문화권, 원주민 문화의 수용과 뉴에이지 운동을 거치며 허브에 높은 해상도를 부여한 북미권, 약재와 진미의 냄새를 오랫동안 분류해 온 중화권과 마찬가지로, 한국 역시 자신만의 세밀한 향미의 영역을 갖는다. 다만 그 대상은 허브나 향신료보다 오신채, 채소의 향미, 발효취에 더 가깝다. 따라서 같은 향을 두고도 어떤 이는 발리 남부의 치킨 마살라를 떠올리고, 어떤 이는 록키 산맥의 검은 잎 허브를 떠올리지만, 한국인은 반나절쯤 햇볕에 두어 살짝 초록빛이 도는 양파 껍질의 냄새를 이야기할 수 있다.
따라서, 같은 향을 묘사한다고 하더라도 표현의 해상도와 방향성은 문화권에 따라 지대한 차이를 갖는다.
우리는 어디까지를 구할 수 있는가?
한국에서, 차나 커피를 묘사할 때 쓰이는 국제 언어를 도입할 때, '베르가못', '블러드 오렌지', '자스민' 등을 사용한다. 그러나, 우리가 그것들을 실제로 설명하기 위해서는 통관을 거쳐 베르가못 오일을 사거나, 희귀 과일 시장에 가서 블러드 오렌지를 사오거나, 한자를 뒤져 중국 쇼핑몰에서 '만다라화 100g'을 사 오는 방법과 같이 꽤 황당한 경로를 거쳐야 한다. 이에 나는 접할 수 있는 우선 순위 아래에서, 일종의 단계를 두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Tier 1. 자국 내에서 생산되며 언제든 마트에서 구할 수 있다
이 단계의 원물들을 구하는 것은 매우 쉽다.
파, 양파, 소고기, 닭고기 등의 원물은 언제나 마트에서 구할 수 있다. 또한, 우리의 미각이 가장 적응된 현대 식재료이다. 따라서 기묘한 19세기 박물학의 영향이 보이는 열대 식재료들과 달리, 21세기 동아시아에서 너무 쉽게 연상할 수 있다.
Tier 2. 수입이 많이 되며 마트에서 구할 수 있다
이 단계의 원물은 때에 따라 온라인 쇼핑몰에서 구매해야 한다.
흑후추, 백후추, 시나몬과 같은 향신료는 쉽게 수입되며 언제든 알 수 있다. 따라서 전문적인 교육을 받은 바리스타가 아니라도, 이런 식재료는 문화권 내에서 매우 흔하게 수입된다. 이러한 식재료들은 대개 한자 문화권의 끄트머리인 베트남 등에서 경작되어 쉽게 구할 수 있다.
Tier 3. 교외에서 구할 수 있으며 먹을 수 있다
이 단계의 원물은 안전성이 보장되지 않은 야생 식물을 포함한다.
줄딸기, 산딸기, 개살구, 덜 익은 오디와 같은 잡목이 이곳에 해당한다. 이것들은 으름같은 향토 과일보단 쉽게 자라나며, 빠르게 동정하여 별다른 위험 없이 야생의 원물을 섭취할 수 있다. 따라서 참고용으로 소량을 섭취하는 데 문제가 없다. 또한, 이것들은 수입산 후추보다는 구하기 어렵지만, 북미산 블랙베리 100g을 구하는 것보다 쉽다. 심지어, 서울 사람조차 이러한 것들은 용인이나 성남에서 비교적 쉽게 채집할 수 있다. 그러나, 만약 적합한 묘사가 해당 지역에서만 자생한다고 해도 적어도 스스로의 이해를 도울 수 있어야 한다.
Tier 4. 향미 휠에 있으며, 구하기 어렵다.
이 단계의 원물에 발을 들인다면, 당신은 아마추어 바리스타가 되려 할지도 모른다.
이 단계의 원물은 구스베리, 블랙베리와 같은 외래 작물이 포함된다. 당신은 이 작물들을 구하기 위해 냉동 원물을 수소문해야 할 수도 있으며, 최악의 경우 종자류 통관을 거쳐 발코니에서 재배해야 할 수도 있다. 이 단계는 때로 안정적이고 넓은 주거 기반을 요구하며, 이는 평범한 서민들에게 매우 충족하기 어려운 요건이다. 이것을 완전히 충족하기 위해서는 바리스타용 원물을 구매하거나 충분한 경제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테이스팅 노트는 왜 홍보에 쓰이는가?
이것은 언제나 알 수 있는 자본가의 섭리이다. 보통 커피나 차를 설명할 때 쓰이는 원물들은 재료공학적인 특성 등을 고려하여 정교하게 분리도와 고유성 척도를 계산한 것들이다. 그리고 이러한 분류는 19세기 서구 미식이나 박물학의 연장선일 때가 흔하다. 따라서 이것들은 학문적인 일관성과 기준을 가지나, 진기한 향료나 향유가 포함되지 않을 수가 없다.
따라서, 이것들을 미식과 미학의 연구 목적으로 사용하는 것은 지식의 축적과 정밀함에 있어 타당하다. 그러나, 이것들을 홍보 문구에 사용하는 것은 '맹자의 좋은 말을 알아보기 힘든 초서로, 사장실에 걸어 두는 것'과 유사하다.
만약, 회사 사장이 맹자의 좋은 어록을 한글로 번역해 걸어 둔다면, 노동자들은 속으로 '자신도 지키지 않을 철칙을 왜 거는지' 의심하며 조직을 신뢰하기 어려울 것이다. 노동자들은 자본가를 의심하며, 때로는 훈계하려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어록은 초서로 작성되어 있어 사장 본인만이 알아 본다. 따라서, 지식의 불평등은 '분위기'를 만드나 정당성을 만들지 않는다.
같은 이유로, 바리스타가 연구한 언어 그대로 포장지에 기록한다면 소비자는 바리스타가 어떤 향미를 망쳤는지 알 수가 없다. 바리스타 본인이 '이번 랏에서 구스베리 향이 나지 않는다'고 자각하여도, 그 사실은 업계 동료가 아닌 이상 알아낼 길이 없다. 따라서, 소비자들은 '이번에도 향이 좋은데, 조금 편차가 있다'고 판단하며 재구매를 하게 된다.
하지만, 이것을 막을 수 있는가?
그러나, 이것을 막기 위해 일상적인 언어로 패키징을 새로 하게 요구한다면, 바리스타들은 자신의 연구 역량을 동원해 소비자들을 위해 또 다른 번역을 해야 한다. AI 등의 거대 기업 기술은 단어를 나열하면 알아 듣기 힘들다는 '기분'을 준다. 따라서 기업들은 자신이 어떻게 신경망을 최적화하였는지 작성하지 않고, '3배 빠른 응답 속도, 2배 긴 기억력'을 홍보한다. 그러나, 커핑의 경우 다르다. 커피에 '구스베리'가 있다면, 사람들은 '구스'가 아닌 '베리'에 이끌리며, 심지어는 사전에 구스베리를 검색하여 가공의 향을 상상한다. 그러고는 '아하, 이것이 구스베리이구나' 착각하며 소비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추가적인 노동과 금전이 드는 행위를 개인 판매자 혹은 대형 공급자에게 강제할 의무는 없으며, 또한 강요하는 것이야말로 권위주의의 온상이라 할 만하다. 따라서 이러한 현상을 막으려 하는 것은 쌀가마니에서 새는 쌀가루를 막기 위해 석유 배럴을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만큼 멍청한 일이다.
그렇다면, 직접 적으면 되지 않는가?
만약 당신이 선천적으로 미각이 부족하다 하더라도, 당신은 온기를 느낄 수 있다. 만약 당신은 선천적으로 신맛을 느낄 수 없다고 하더라도, 당신은 단 맛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우리가 진정으로 같은 맛을 느끼고 사는지는 유전학자들도 답하기 곤란한 문제이다.
따라서, 이러한 맛의 판단 기준은 결과적으로 나 자신에게 돌아오게 된다. 그리고, 이 언어는 개인의 고유한 경험에 의존하게 된다. 만약, 어떤 미국인이 커피에서 '야생 가지류의 향이 난다'고 한다면, 한국인인 나의 배경 지식으로는 그것을 알 수 없다. 그러나 미국인들 사이에서는 '그것이 무슨 향인지 알 만하다'는 평을 들을 것이다. 반대로, 내가 '이 커피에선 명확히 줄딸기의 열매 맛이 난다'고 하면 미국인이 그 말을 알 길이 없다. 그리고, 이러한 경험의 차이는 결과적으로 피할 수 없다.
따라서, 이 길고 지루한 글에서 내가 마무리하는 말은 다음과 같다.
연구는 연구대로 두어라. 판단은 내가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