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이상한 시샘
by
gg582 · 2026-09-24 16:45:57 · 56 views · 2 min read
바라지 않는 것을 바랄 수 있는가?
시작부터 이상한 말이고, 공손룡의 백마비마(白馬非馬) 논쟁처럼 논리가 서지 않는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말이 되지 않는 염원을 우리들은 적어도 한 번은 가진다는 것이다. 내가 2년을 알고 지낸 전산학도 아무개 군의 경우를 들어 보자. 지금의 아무개 군과 대화해 본 사람들은 모두 아는 사실이겠지만 그는 딱히 방탕했던 고교 시절의 생활을 후회하지 않는다. 되려 지방의 낡아 빠진 대학이지만 어셈블리로부터 Go 언어와 같은 최신 언어까지 교수님에게 1:1로 강습받는 일을 되려 '급료를 받고' 했다는 점을 다행스럽게 여긴다.
그러나 그 역시 한참 출장을 다닐 때까지만 하여도 서울권의 유명 대학, 가령 서울대나 성균관같은 유수의 대학에 가지 못하였다고 후회했다.
얼마나 모순된 일인가, 설령 그가 밤을 세워 그러한 대학에 갔더라도 좋은 교수를 만나지 못했으면 출장을 빙자한 대전 여행이나 갔겠냐는 말이다. 갔으면 동기들과 '돈을 써서' 본가에서 3시간 남짓도 안 떨어진 '부산항 구경'이나, 기차 타고 30분 걸리는 경주 여행을 준비하며 안 설레도 되는 일에 설레지 않았겠냐는 것이다. 그리고는 얕은 본성을 이기지 못하고 이러한 말을 했을지도 모른다. "내 고향은 영남이지만, 이제는 서울 사람이지" 라던가. 역설적으로 지금의 아무개 군이 지역색을 치기어린 고집을 부려 가며 지키는 것은 '입시 실패' 덕이니, 이를 실패라고 할 수 있는가.
그러나 정말 그 때 대학 입시에 열망이 없었음에도 막연하게 좋은 대학을 바랐냐고 하면 양심이 없게도 "그렇다"는 것이다. 그러나 논리로 보면 이상하지 않은가? 열망이 없는데 어떻게 바라기는 하는가. "열렬하게" 바라지 않더라도 열망의 '망' 자는 될 것이다. 무슨 말이 안 무슨 말이 안 되는데도 비망역망(非望亦望)이라고 하겠는가? 광문(狂文)이 아닌가?
어쩌면 이런 모순은 우리가 타인을 보고 따라하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수학자가 되겠다며 몽당연필을 들고 씨름하던 "전교 1등"이 부러워 시샘한 것을 스스로는 "바란다"고 여겼거나. 웃기게도 그의 코드 머리말에 "아벨의 정리를 따름"이나 "이 함수를 x에 대해 편미분하여"가 없었다는 건 무엇을 의미하는가.
어쩌면 우리 모두가 아무개 군의 이상한 시절을 겪고서야 어른에 가까워지고, 더 나아가 군자가 되고 지아비가 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거였다!' 하고 답을 내리고 나면 처음부터 답을 얻었다고 으스대어 다시 중심을 잃습니다. 하지만 이번 답을 얻기까지에 어떤 길을 걸었는지 생각하고 또 생각하면 다시 선택의 기로에 섰을 때 흐트러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Repor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