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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델, 에셔, 바흐라니? 바흐는 직장인이었다

by gg582 · 2026-10-25 14:59:32 · 7 views · 5 min read

Table of contents

서두

요즈음 교양 서적에서 바흐를 마치 음악의 현신처럼 표현한다. 그리고 그의 음악이 정답인양 말한다.

나는 이에 대한 개인적이고도 도발적인 얘기를 하고자 한다. 사실 도발보단 맨날 나오는 IT와 철학이란 담론이 지루하고 너무 거대해서 하는 소리지만...

굉장히 소박한 얘기다.

직장인 바흐

바흐가 바이마르 성에서 어떻게 이직하게 됐는지 한 번 보자.

먼저, 바흐는 바이마르에서 쾨텐으로 이직하고 싶었다. 이직을 하려면 당연히 영주에게 사직서를 내야 한다.

살림살이는 빠듯하고, 초일류는 아니고...하나둘 신경쓰려면 참 피곤했던 가장 바흐는 이직 준비를 철저히 하고, 쾨텐으로 가겠다면서 사직서를 냈다.

그런데 바이마르 영주는 사직서를 반려했다.

바흐: 이미 쾨텐 갈 채비는 다 했는데...

바흐 입장에선 당연히 기가 찬다. 억울했던 바흐는 이런 법이 어딨습니까라며 항변하고, 당시의 열악하고 황당했던 노동법은 놀랍게도 바흐를 하극상으로 1개월간 구치소에 수감시킨다.

잘 생각하자. 현대인의 도덕은 문과가 쏘아 올린 로켓이다. 저 시대엔 아무도 이상하다고 생각 안했다.

어쨌건 죽어라 고생하고 출소한 바흐는 쾨텐으로 옮긴다.

쾨텐 영주는 나름 괜찮은 사람이었는지, 바흐는 이직해야겠단 생각을 크게 하지 않는다.

그런데 출장을 갔다온 사이, 아내가 세상을 떴고, 이미 자기 없이 장례까지 다 끝낸 상태였다.

생각해 보자. 과거 시대에 가장이 갖는 무게가 있는데, 지아비 없이 아내 장례를 치렀다고 하면 남편의 심정이 어떻겠는가?

이런 아픈 추억이 생겨버린 쾨텐에서의 괴로움을 떨치고자 바흐는 요즈음에는 "바흐의 도시" 내지는 "트렌디한 도시"로 먹히는 라이프치히로 이직한다.

물론 바흐의 실력은 초일류지만 당시 라이프치히의 평가는 매우 박했다.

일류는 텔레만이고 그 다음이 그라우프너인데, 바흐를 고용하게 되니 참 아쉽다.

심한 경우 바흐가 고졸인 걸로 씹는 사람들도 매우 많았다.

텔레만은 심지어 바흐의 친구였다. 아무리 친구라지만 대졸자 친구가 조건이 나빠서 버리고 간 카드를 주워 먹는 바흐의 심정이 어땠을까?

나라면 좋은 기분은 아니었을 거다.

그렇다고 텔레만이나 그라우프너가 바흐보다 음악을 못 했느냐? 아니다. 저 둘은 탑 티어였고, 지금도 탑 티어이다.

물론 고래들의 싸움이지만 비교하면 이 정도로 황당한 평가이다.

켄 톰슨과 다니엘 J. 번스타인을 초빙하지 못했으니, 유키히로 마츠모토를 초빙하겠다. 근데 아쉽네...

참 똑똑한 사람들 두고 하는 짓이 뭐 저런지 모르겠다. 무례하네. 마츠 상이라고 생각해보면 어쨌건 우리는 범접도 못하잖아?

가장 바흐

라이프치히로 이직한 바흐는 그 때 38세였다.

애들도 크고, 교육도 시켜야 하고, 자기랑 달리 애들만은 대학도 보내고 싶은 바흐가 결재받은 서류들을 보면 짠하다.

근무 시간을 대폭 늘이는 대신 임금 인상

워라밸 붕괴 그 자체다.

이렇게 개처럼 일해서 막내아들 빼고 아들들은 다 대학 보냈는데, 웃기는 일이 여기서 일어난다.

막내가 제일 성공했다. 요한 크리스티안 바흐.

J.C 바흐라고 하면 클래식 좀 아는 사람들은 들어본 이름이다.

그리고 그 막내의 제자는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이다.

예? 이게 무슨 운명의 장난이야.

그리고 한 가지

보통은 바흐가 아주 위대하고 거룩한 "음악 이론서"라도 썼을 것이라고 지레짐작한다.

그리고 그 자신의 작품이 이론적으로 극도로 무결할 거라고 생각한다.

그건 장필리프 라모가 그런 사람이었다.

바흐는 "이탈리아 협주곡"이라던가, "영국 소품집"처럼 남의 나라 스타일을 잘 가져오곤 했다.

이탈리아식의 경쾌함이 이론적으로 얼마나 느슨한지 아는 사람은 바흐가 얼마나 실용주의였는지 눈치챘을 거다.

그니까 뭐랄까...라모는 기술적으로도 뭐로도 흠잡을 수 없는 조니 윈터라면, 비발디는 순수 체급으로 음악을 잘하는 손 하우스다. 좀 시대는 안 맞지만 독특하고 맛이 사는 점이라면, 윌리엄 버드는 보 카터이다.

근데 바흐는 모두 아니다. 블루스를 잘 하고, 깔끔하고, 흥 돋울 줄도 아는데, 어디 하나에서 초월자 수준이 아닌데...근데 잘 해. 토킹 헤즈나 니나 하겐처럼.

잡설이지만 찾아 들으려면 조니 윈터랑 라모는 누가 들어도 좋을거다. 내 취향을 들어보려면 보 카터를 틀어두고 따뜻한 커피를 마셔 봐도 좋고..

그래서, 바흐가 뭐 어쨌다고?

바흐랑 모던한 프로그래밍이 뭐 어떻게 연관이 있다는 것인가. 음악은 음악이고, 듣고 즐기면 좋은 음악이고 아니면 나쁜 음악이다.

듀크 엘링턴 아저씨가 뭐라고 했는지 아는가?

"음악은 두 종류가 있죠. 좋은 음악, 그리고 그렇지 않은 음악이요."

이렇게 정중하고도 정밀한 판단이 어디 있는가. 나는 클래식의 내노라하는 작곡가 수백 명보다, 단 한 명의 작곡가 "듀크 엘링턴"이 훨씬 더 신사적이고 우아한 사람이었을 것이라고 다못 확신한다.

초월자급 음악가? 나라면 블라인드 윌리 맥텔을 꼽겠다. 좋은 남편, 뚝심 있는 신앙인, 그리고 위대한 예술가였다.

그럼 바흐는 대체 어디에 서는가?

신념형 초월자도 아니고, 결벽증적 이론가도 아니다. 그런데, 사람 냄새는 난다.

그 사람 냄새가 대체 디지털 시대의 모던하고 총론적인 결벽증과 뭔 상관이 있는지 모르겠다.

솔직히 "니체로 읽는 IT 개발문화" 같은건..좀 지치고, 너무 날 서있다. 그 날이 좋은 쪽으로 서 있는지도 모르겠고.

살짝은 난문이란 생각도 든다.

나는 몇 가지 책을 권하겠다.

C 프로그래밍 초판, A first course in network science, 구장산술, 구수략, 익산, 구일집, 양휘산법.

읽기 순서는 C 프로그래밍 초판, 구장산술, 구일집, 구수략(혹은 양휘산법. 구수략이 양휘산법을 인용하고 보강한다.), 익산, A first course in network science(구수략의 도상들을 그래프로 쓰면 뭐가 재밌지? 하고 읽어보자)

그리고 천원술과 주산(籌算) 정도를 익히자. 주판 쓰는 법은 몰라도 되고, 산가지를 이용한 주산만으로 충분하다.

이것들은 시대와 선택압에 따라 어떻게 반복적으로 유사한 문제 해결 도구가 등장하며, 수치적으로 어디까지 최적화하고 어디서 멈추는지 생각보다 괜찮은 통찰력을 준다.

당신이 철학을 원하면 나는 역시 몇 가지를 권한다.

논어, 맹자, 시경, 주역, 도덕경, 장자. 금강경 무량공덕의 일부를 읽어보긴 했는데, 불가는 생각보다 애매~하다.

사람이 사람다워야 사람이라는 말이 단순 장난이 아니고, 흘러가는 일에 대해서 판단을 가지되, 싸우지 않고 얘기를 나누는 법을 참 많이 얘기한다. 그러니까 뭐랄까...저런 알고리즘적인 것들을 막 보다 보면 사람이 시비심(是非心)이 너무 강해진다는 느낌이었다. 인격 수양도 좀 해야 좋은 사람이지.

진덕수의 심경도 좀 읽고 있다. 이거도 참 좋다.

판단력을 원한다는거 아닌가? 그럼 맞고 틀림을 알되, 어느 정도는 부끄러워할 줄을 알아야지, 무슨 단자론이 어쩌고 꿈같은 소리를 하자는 건가.

그리고, 가장 마지막으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사람 냄새이다

판단을 한다고 해서, 코드가 어쩌니 일갈하거나 하극상하는 것도 참 애매~하다. 코드만 가지고 개선 논의를 하는게 이상적이지만, 그게 그렇게 안 되고 인신공격으로 확산되기도 한다.

개선이 필요한 것을 덮고 넘어가는 것은 나태함이다. 물론 개선은 해야겠지만, 점진적으로 상황을 봐 가며, 그 선택압과 인원이 가장 잘 감당할 수 있는 쪽으로 협력해야 한다.

무리하게 진행했다가, 몇 사람 나가서 수습이 안 되거나. 기술로 지적했다고 생각하면서 '실리콘 밸리 스타일' 리뷰를 했다가 결국 분위기만 이상해지거나.

이런 게 연구실이나 소규모 팀에서는 매우 흔한 일이다. 연구실에서도 겪었고, 인턴에서도 겪었다.

연구실에서는 내가 목소리를 내는 쪽이었고, 인턴에서는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입장이었다.

그리고 이런 조율에 있어서 솔직히 늘 좋은 쪽으로만 행동했다곤 할 수 없다. 사람이 일정 맞춰서 연구 쳐내고 하다보면 칭찬도 하고, 짜증도 내고 하는 일이니까.

그리고 그런 비대칭이 "기계적인 효율"을 외치면서 생긴 거지, 사람 봐 가면서 생긴 일도 아니지만, 어쨌건 제일 오랫동안 한 연구실 생활에서는 밥도 먹고 잡답도 하면서 풀어 나갔고.

팀이 버틸 수 있는 하중으로 일을 이끌어야지, 빨리빨리가 사람보다 중요할까. 연구실에서 친하게 지내던 형은 경상북도 모 시에서 개발자를 하는데, 사람들이 좋아서 일할 맛이 난다고 했다.

그리고 그건 되게 중요하다. 그 형이 외국인이어도 언제나 좋은 인상이었던 건 그런 면에서 참 둥글둥글한 형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름 '기술 중심'이었던 교수님 밑에서 배운 제자 치고는 특이한 결론을 내려 본다.

어쨌거나 바흐는 중요할 수 있지만, 그 중요함은 구조적이고 어쩌고 하는 것이 아니다.

골치아파도 사람 도리는 해야 하고, 잘 살다 간 한 명의 직업인이 가진 책임감을 좀 되돌아 봐야 한다.

그러거나 말거나, 사실 이거도 그냥 책 읽는거 좋아하는 잡식 다독가의 의견일 뿐이다. 장자 아저씨가 그랬듯 참고가 됐으면 핵심만 느끼고 잊으면 된다. 우리가 코드 짤려고 키보드를 치는 사람이지 춘추전국시대 정치인은 아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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