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티오피아 게뎁 라레사 G1 워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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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g582 · 2026-11-02 08:35:47 · 7 views · 4 min read
레시피
레시피 1을 따른다. 왜 레시피에 분재같은 이름이 붙었는지 참 알기 좋은 추출이 되어서 기분이 좋다.
시음 잔
섬세한 향미보단 직선적이고 혀에 퍼지는 향이 클 것으로 보인다.
기존 시음 잔은 보울형이나 벽면이 살짝 기운 채 곧게 뻗다가 입구만 완만하게 외반되어 있고, 류커피 로스터즈의 잔을 납작하게 눌러서 바닥을 평평하게 편 듯한 형태였다.
굳이 말하자면 Flared랑 Bowl 형 사이의 느낌인가? 근데 오지게 납작하다. 의외로 모카 포트 추출에서는 드립 커피처럼 와인잔같은 모양이 맞지도 않고, 전통적인 "모카 잔"인 데미타세도 어울리지 않았다.
그래서 벽면이 조금 더 두껍고, 직선적인 벽을 가지지만, 끝만 미묘하게 외반된 잔을 쓰기로 했다.
표면에 미묘한 빙렬이 가 있는데, 사실 만져 보면 가마에서 갈라진 거라서 괜찮긴 하다. 물을 떨어뜨려 봐도 타고 올라가지 않고, 미용 티슈의 반의 반 정도 두께만 살짝 단차가 있는 정도라서...아마 맛에는 영향이 없을 거다. 물이 배어 나오거나 색이 번지지 않고, 저 갈색 줄 그대로 있으니까...
기능적으로 가성비가 좋은 컵이긴 하다. 분해능이 어떤지 계측 장비를 들고 와서 재 보면 흥미로울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데미타세를 써서 맡을 수 없던 향들이 잘 맡아진다. 조금 진한 드립을 먹는 느낌이랄까나?
원두
원두도 기록한다.
0.2mm 샤프랑 비교해 보자. 샤프 길이는 146mm.
추출 결과
유분이 상당히 절제되어 있다. 용액은 약간 묽다는 느낌이다.
컵 노트
레몬, 네이블오렌지, 산딸기, 백차, 5-10년 내외 숙성된 보이차 청병, 온주귤, 밀크 초콜릿, 백매화, 노래진 인동꽃, 개살구, 바싹 말린 납작파래
어...달리 표현하기 애매하다. "라벤더"라는 표기보단 사실은...인동꽃과 백매화 향을 섞어 놓은 느낌이라서 그냥 이렇게 쓰고 싶다.
귤맛과 네이블오렌지 맛이 분명하고, 매향이랑 비슷한 향기가 좋다.
차나 허브같은 산미가 있는 게 꽤 재미있다. 워시드 치고 단맛도 좋고, 향도 생각보다 풍부해서 긍정적이다.
가공에서 차별점을 둔 게 아니고, 품종이 고급인가? Wolisho, Dega 품종을 섞어서 키운 것으로 보이는데, 이 종자들에 대해 좀 찾아봐야겠다.
음...찾아 보니, Wolisho가 꽃향과 감귤류 향이 잘 난다고 한다. Dega는 꿀맛과 밀크 초콜릿 맛이 핵심이라고 하네.
워시드를 하는 만큼, 내추럴 가공에 비해 단맛이 빠지니까...품종의 배합으로 조절하겠다는 건가? 매우 기술적인 감각이네.
또 재밌는 건, 내추럴을 같은 방식으로 추출할 때 느껴지는 "혈관이 막힐 것 같은" 농밀함은 느껴지지 않았다.
아마 물을 타고, 기름을 걷어 버린 후 블라인드 시음시켰다면 드립 커피와 구별이 불가능했을 거다.
그러니까 "내추럴은 원시적, 워시드는 현대적"이라는 게 아니고, 에티오피아 현지 농부들에게는 둘 모두 농업 기술로 받아들여진다는 건가? 에티오피아란 나라의 커피 경쟁력, JARC의 방대한 품종 보유 현황을 보면 "원시적인 가공법"을 외화벌이용 수출 품목에 쓴다는 게 판타지다. 그런 건 5일장에서 에누리해서 염가형으로 팔겠지.
무엇보다 일부 마케팅에서 "태초의 맛"이라던가 "아프리카의 신비"라고 하는 것도 이상하다.
아프리카의 신비고 뭣이고, 에티오피아는 우리보다도 훨씬 일찍 독자 알파벳을 가지고 있었고, 방대한 고서를 보유한 문명국이다.
좋은 옷을 입고, 긴 소설책도 읽을 수 있는 사람들한테 뭔 원시를 찾겠다는 거지. 그거 되게 무례한 말이다.
추가 추출
이 원두는 용액을 섞지 않고, 냉각 시간을 2분 늘리면 의도적으로 순환적으로 풀리는 맛을 만들 수 있을 거 같다.
해 보니 아래와 같다. 세 번에 나누어 마셨다.
(산딸기, 백도, 찔레, 붉은 장미, 백매화, 흰 백합)
산딸기, (계피, 시나몬, 흑후추), 레몬, (네이블 오렌지, 온주귤)
산딸기, 오렌지, 흑후추, (온주귤, 레몬), (백도, 네이블 오렌지), (온주귤, 산딸기), (레몬, 흑설탕), 밀크초콜릿
계피는 맵고 달고, 시나몬은 달고 가볍다. 둘은 엄연히 다르다.
괄호로 묶은 것처럼, 여전히 향이 서로 묶여서 수직적인 구조를 이루려는 저항감이 있다. 기본적으로 원두의 본상이 순환적인 맛을 위해 설계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산딸기가 머리에 오고, 시나몬이나 흑후추 후에 레몬이 반드시 나오고, 레몬 다음에 반드시 귤이나 오렌지 맛이 난다는 규칙이 있다.
마찬가지로 마지막엔 밀크 초콜릿 맛이 확실히 나온다. 이건 분명히 의도된 맛의 설계이다.
총평
일단 내 평소 취향이 아닌 워시드임에도 이렇게 기술적으로 좋은 완성도를 가진 원두를 만날 수 있었다는 건 새로운 발견이다.
좋은 의도를 가지고 잘 통제된 원두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맛이 수직적으로 쌓이는 느낌이라서 집중하지 않으면 노트를 구분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이런 유형의 추출액에 평소 쓰던 잔을 써 봐야, 수평적이고 느슨하게 풀리는 향에 적합한 물건을 여기 쓰는 건 별로 좋지 않았을 거고.
그리고 굳이 국룰 품종인 74158이나 74110을 안 쓰고, Wolisho와 Dega를 섞어서 통제하고자 한 라레사 가공소의 품질 검역 관리자들의 취향이 강하게 들어간 느낌이다.
생산자보다는 현지 마케터의 비즈니스 감각이 보인달까?
4.57/5.0 (정숙하고 깔끔한 맛, 커피가 아닌 차였다면 아마 만점. 누구나 마시면 좋아할 깔끔함.)
조금 풀어내서 마신 경우, 4.6점이나 4.7점까진 줄 수 있겠다.
이 경우는 기술 점수도 같이 적겠다.
4.2/5.0 (대중적인 마케터로는 정말 만점. 그러나 맛이 너무 안정적인 성향이다.)
왠지 이 원두는 음악가 비유가 잘 어울린다.
맑은 소리로 노래할 줄 알고, 경쾌하고 밝은 기타 사운드를 좋아한 블루스 가수 "헨리 토마스" 씨가 생각난다. 커피가 음악이라면 딱 헨리 아저씨 소리다.